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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디씨 여행

워싱턴 DC는 언제 어떻게 미국의 수도가 되었을까?

by 워싱토니언 2024. 1. 30.

사실 미국의 수도가 처음부터 워싱턴 DC였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초기에는 뉴욕시(1785-1790) 미국의 수도로 사용되었고, 이후(1790-1800)에는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가 수도로 사용되었지요.

워싱턴 DC 1800년에 미국의 수도로 정해진 1801년에 정식으로 수도의 역할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워싱턴 DC 미국의 수도로 최종 결정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공화국 초기에 이루어진 정치인 리더들(Founders) 간의  협상과 합의 과정의 결과인데, 몇가지 요인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워싱턴 DC

 

1. 지리적 중립성:

건국 리더들은 수도를 지리적으로 중립적인 지역에 두어 어떤 주에도 편중되지 않도록 하고 국가적인 통일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2. 1790 타협:

1790 당시 미국은 각주 간에 재무 문제와 수도 위치를 두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은 각주 부채를 연방 정부가 떠맡아 해결하고자 했지만, 이를 지지하는 남부와 미들 애틀랜틱 지역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북부와 뉴잉글랜드 지역 간에 갈등이 빚어졌지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토마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 등의 남부 대표들은 알렉산더 해밀턴과의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협은 남부가 각주 부채 문제에 동의하고, 대가로 연방 수도가 남부로 이전되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타협은 1790 주거법의 채택으로 이어졌는데,  이 주거법은 미국의 영구 수도를 생성하기 위한 법으로, 현존하는 연방 수도인 뉴욕에서 다음 수도를 찾기 위한 조건을 정한 것입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에 의해 워싱턴 DC가 새로운 미국의 수도로 선택된 것입니다.

 

3. 제임스 매디슨의 영향:

제임스 매디슨은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헌법의 주요 옹호자이자 향후 대통령이 되는 매디슨의 영향은 1790 주거법을 지지하는 결정적이었습니다.

 

4. 피에르 찰스 랑팡의 계획:

조지 워싱턴은 프랑스-미국 엔지니어인 피에르 찰스 랑팡에게 새로운 수도의 도시 계획을 작성하도록 지명했습니다. 랑팡은 대형 대로, 공원, 중요한 공공 건물을 갖춘 도시를 상상했습니다. 그의 계획은 지역의 자연 지형을 통합하고 시민 디자인의 유리한 이상을 반영했습니다.

 

5. 포토맥 위치:

포토맥 강을 따라 위치한 곳은 물류 방어적인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강은 수송 수단을 제공하며, 전쟁과 같은 상황에 대비해 지형 지물을 이용한 자연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예상된 면도 있었습니다.

 

6. 상징적 중요성: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수도의 위치 선택에 깊게 관여했습니다. 수도를 그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포토맥 강을 따라 위치시킴으로써 상징적인 측면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직과 연방 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측면도 있었지요.

 

정리:

1790 주거법은 연방 정부의 영구적인 수도로 사용될 도시의 조성 확정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대통령의 재량에 맡겨졌고, 이에 의해 워싱턴 DC가 선택이 된 것입니다.

건국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 간의 지역적 이해관계와 중립적이며 중앙에 위치한 정부의 필요성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이루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수도가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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